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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len Focus>를 읽고

2025.01.25

2024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뉴욕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 The Art of Doing Science and Engineering이라는 책이 트위터에서 핫하길래 한 번 사서 읽어보려고 서점에 들렀다. 하지만 컴퓨터과학 섹션이 있는 지하를 열심히 뒤져도 발견하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1층 서가에서 대충 눈에 띄는 책을 집어 들었다. 예전부터 관심만 가지고 있던 Stolen Focus(한국어 번역서 제목 도둑맞은 집중력)라는 책이다.

이 책은 현대 사회가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를 탐구한다. 우리의 집중력은 어떤 요소로부터 방해받는지, 또 언제 각성하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본다. 그리고 집중력 문제를 이겨내기 위해서, 개인의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회 구조적 문제가 뿌리임을 짚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종의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에서 "집중력의 문제는 개인의 변화에서 그치면 안된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둘러싼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반복적이고 단정적으로 언급한다. 집중력의 향상을 위해서 개인이 실천해볼 수 있는 여러 테크닉을 기대한 독자가 많아서 그런지, 여기에서 호불호가 꽤 갈리는 것 같다. 사실 나도 집중력 문제를 겪고 있고, 쉽고 빠른 해결책을 얻으리라는 은근한 기대를 품은 채로 이 책을 골랐기 때문에 실망한 부분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왜 저자가 사회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지 차츰 이해가 된다. 나 하나 바뀌어서 집중력을 되찾아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답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개인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유용한 정보 역시 많이 제시되어 있고, 일단 구조적인 문제를 이해해야 개인 단위에서 고민해볼 지점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나처럼 속물적(?)인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한 사람들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왜 사회 운동을 말할까? 일단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집중력을 망가뜨리기 위한 장치가 도처에 배치된 환경에서 개인이 집중력을 회복하려는 시도는 마치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가려는 행동과 같다. 일시적으로 진전을 만들 순 있지만 언젠가는 끌어내려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고는 우리 스스로를 의지박약이라며 비난한다.

저자는 자신의 집중력 문제를 인지하고, Provincetown에서 무려 석 달 동안 휴대폰과 인터넷 없이 생활하기로 결심한다. 이 시간은 그에게 집중에 대한 많은 교훈과 깨달음을 주었지만 오래가지 않아 다시 집중력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나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음에도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다시 굴레로 떨어진 것이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면 개인의 노력으로 집중력을 온전히 되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에스컬레이터를 멈춰서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집중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집중력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정말 이렇게나 중요한 일일까? 왜 사회 운동까지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집중력 문제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졌다고 가정할 때, 내가 떠올리는 상황은 단순히 학생들이 숙제를 제 시간에 못 끝마치게 되고 직장인들이 회사 일에 소홀해지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개인의 집중력 하락 문제는 곧 사회의 집중력 하락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되면 결국 인류가 기후 위기, 마약, 전쟁 문제에서 힘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마지막 챕터 Attention Rebellion에서 기후 위기에 의한 산불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 지점을 특히 강조하는데, 최근 발생한 LA 산불과 겹치면서 살짝 섬뜩한 기분까지 들었다.

아무튼 여러모로 책을 읽는 여러 순간에 반성, 후회, 감동, 놀람...을 느낄 수 있었다(쓰고 보니까 클릭 낚시 유튜브 제목 같다). 아직 비판적 읽기가 잘 안되는 것 같아서 다른 후기도 몇 개 찾아보았는데, 어떤 챕터는 좀 과장된 부분이 있긴 한가보다. 그래도 저자의 개인적 경험, 수많은 전문가의 견해, 학계의 논의 상태 등 쉽게 알 수 없는 정보가 책에 잘 풀어져 있어서 집중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하다.


  • 대학교 전공 서적을 제외하면, 이 책은 내가 영어 원서로 읽은 첫 번째 책이다. 독서 초반에는 모르는 영단어를 다 사전에서 찾고 넘겨야겠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렇게 책을 읽으니까 집중력을 도둑맞아버렸다. 그래서 후반에는 아예 처음 보는 단어여도 문맥상 대충 추론하고 넘겼다.
  • 한국어 번역서의 표지가 훨씬 예쁘다. 어디서 한국 책들이 표지가 가장 예쁘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지금은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을 읽고 있는데 이 책도 표지가 정말 예쁘다.
  • 그런데 한국어 번역서 후기를 보니 번역에 대한 불만이 엄청 많았다. 원서로 읽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 놀랍게도 5년 만의 블로그 글임을 깨달았다.